초현실주의(Surrealism), 그 위대한 현실 속으로 미술이야기

이발사처럼 보이는 한 사내가 면도날을 손질한 후 한 여인에게 다가간다. 그리곤 날카로운 면도날로 그녀의 눈을 절단하는 사내. 살바도르 달리와 그의 친구 루이 브뉘엘이 만든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1929)에 나오는 유명한 장면이다. 여인의 눈을 열고 들어선 우리들에게 펼쳐지는 이후의 장면들 - 새로운 현실 세계 - 역시 충격의 연속이다. 느닷없이 등장한 피아노 위의 나귀의 머리, 갑작스레 여인을 탐하며 덤벼드는 사내... 아무런 인과관계도 설정되지 않은 영화의 흐름은 하반신을 모래밭에 묻은 해변의 두 남녀를 담은 장면으로 끝난다. 영화는 빠르게 전개되는 몽타쥬기법으로 이미지들의 충돌을 보여줄 뿐 우리에게 아무런 메시지도 전달하지 않는다.

상징주의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에 나오는 "해부대 위에서의 우산과 재봉틀의 기이한 만남처럼 아름다운"이란 문구는 1920-30년대 초현실주의자들의 슬로건이었다. 우산도 재봉틀도 전혀 기이하거나 비현실적인 사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병치, 그것도 외과의사의 수술대 위에서의 나란히 놓여짐은 독특한 초현실적 유머를 지닌다. 영화는 이런 종류의 유머에 아주 적절한 매체다. 영화 속 현실에서는 정신의 자유롭고도 환상적인 흐름이 가능하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그런 유머로 가득 차 있다. 서로 충돌하는 장면들의 전후 관계에 대해 우리가 질문을 던진다면 이런 류의 영화는 도무지 감상할 수가 없다. 단지 그 기묘하고 짓궂은 유머를 즐길 따름이다. 영화만큼 현실적 경험을 전달하기에 적절한 매체가 또 있을까? 그러나 그런 만큼 존재의 일상적 모습의 파괴와 이에 따른 새로운 현실의 표출은 보다 큰 충격, 보다 큰 혼돈을 안겨주는 것 같다.


사진과 영화가 발명되기 전, 시각 이미지 생산의 주요매체는 회화였다. 가능한 한 실물과 닮은 이미지를 재생할 것, 이것이 환영주의(illusionism)를 지향하는 서구 회화의 전통적인 임무였다. 달리는 자칭 "손으로 그리는 사진"의 대가였다. 그의 그림은 정말 놀라울 만치 정밀묘사가 뛰어나다. 그의 대표작 <기억의 고집>의 모호한 전경 뒤에 있는 해변가 풍경은 그가 나고 자랐던 스페인 까딸로니아 지방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현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기괴한 현실이 있다. 나뭇가지가 자라나는 책상, 그 위에 걸려 있는 축 늘어진 부드러운 시계, 그리고 무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해변의 생물체. 달리는 초현실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일관된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화가다.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시즘으로 무장하고 현실을 변혁하고자 했던 1930년대의 초현실주의는 "혁명을 위해 봉사하고자" 했다.


이때의 혁명은 물론 프롤레타리아의 해방과 자본주의의 붕괴를 꿈꾸는 혁명이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의 지도자 앙드레 브르똥에 의하면 진정하게 혁명적인 예술은 성공적인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인간적 욕망을 대담하고도 독창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예술적 상상력의 자유를 최우위에 두고 어떠한 실제적인 목표도 거부하는 브르똥과 당대의 초현실주의자들은 명백히 이상주의자들이었다. "진실한 지각 너머로 확장되는, 그러나 환각(hallucination)과 혼동되지 않는 순수한 정신적 표상"에서 그 구성요소를 도출해내는 회화를 지향함에 있어서 초현실주의는 달리에게서 그 모델을 찾을 수 있었다.

달리는 1928년 파리에서 호앙 미로를 통해 초현실주의자들을 소개받았고 1929년 까다께즈의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초현실주의적 방법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는 늘 이젤을 머리맡에 두었고 비몽사몽간에 보았던 이미지들을 포착할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그는 프로이트의 충실한 사도였던 것이다. 달리의 이른바 "편집병적 비평법"(paranoiac-critical method)은 눈속임(trompe-l'oeil) 회화의 대가이자 정신분석학자였던 그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초현실주의의 이상이었던 현실과 상상의 완벽한 종합은 어쩌면 정신병자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지도 모른다. 편집병은 예컨대 자신이 대단히 위대한 인물이며 국제적인 중요한 사건들이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식의 망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망상은 대단히 일관적이어서 편집병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 나름의 논리적인 추론이 가능하다. 달리는 외부세계의 대상들을 제 멋대로 해석하는 편집병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병증을 가장하거나 조절함으로써 섬망상태에 도달하였고 그러한 상태에서 얻어낸 이미지를 정밀화법으로 기록하였다. 그렇게 완성된 달리의 회화에선 그의 음식에 대한 강박, 공간 공포, 변태적 에로티시즘, 자궁 향수 등을 읽을 수 있다. 그가 단순한 정신질환자와 구별되는 점은 그가 심리적 혼란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고 사고하면서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완전히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탐험했던 것은 서구 합리주의 문명의 소산을 거부하고 인간 본연의 상태, 즉 원초적인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관습과 교육이 강요하는 모든 억제행위의 고삐를 늦출 때, 가령 꿈 혹은 광란의 상태에서는 무의식이 저절로 발현되고 정신은 진정하게 자유로와진다. 브르똥과 초현실주의자들은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시로 혹은 회화로 옮기는 자동기술(automatism)을 훈련함으로써 무의식의 메시지를 포착하고자 했다. 회화에서 자동기술의 기법을 발전시켰던 주요 인물들은 막스 에른스트와 앙드레 마쏭이다.


초기의 에른스트는 잡지의 삽화에서 오려낸 이미지들을 화폭에 붙이는 꼴라쥬 기법으로 동떨어진 이미지들을 우연하게 병치시키는 "시각적 이미지의 연금술"을 보여주었다. 1925년 에른스트는 호텔 마룻바닥의 나무결 무늬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혀 마룻바닥에 종이를 놓고 문질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얻어낸 무늬의 흔적에서 그는 숲, 초원, 동물의 무리 등을 떠올렸고, 이 문지르기(프로따쥬) 기법은 회화에서의 자동기술의 한 방법이 되었다. 마쏭의 자동기술적 회화는 보다 더 원초적이다.


전쟁에서 받은 극심한 충격으로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약물과 알코올로 병들어 있었는데, 자신이 가진 사회에 대한 반감과 분노를 대단히 폭력적인 화면을 통해 표출하였다. 마쏭은 아무런 관념의 통제도 받지 않은 채 무계획적이고 거친 필획으로 화폭을 휘저었다. 그는 단지 그리는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캔버스에 아교를 칠하고 모래를 뿌리고 솔로 문질렀다. 마치 고대의 제식처럼 이뤄진 회화작업이 최종적으로 보여주는 화면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난폭한 물고기들이다.


르네 마그리트의 세계에서도 억압된 욕망, 괴기적 상상력, 로트레아몽식의 당혹스러운 시적 효과를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유클리드의 산책>(1955) 같은 작품에서 우리가 느끼는 당혹감은 다른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작품에서 느꼈던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창문 앞에 놓여진 캔버스 화면은 분명 창밖의 풍경을 묘사한 가상적 공간이다. 고도의 정밀화법으로 그려진 마그리트의 화면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당혹스러움은 실제 공간과 가상적 공간간의 모호한 경계에서 기인한다. 마그리트의 '그림 속의 그림'은 과거의 '현실을 보는 창문'으로서의 회화 개념에 대한 멋진 대치(代置)다. 우리는 혼돈스럽다. 내가 보는 것은 캔버스에 그려진 풍경인가, 아니면 창문 밖의 풍경인가? 현대의 대다수 화가들이 거부하는 환영주의 전통의 전제의 모순이 이 그림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르네상스 시기이후 서구 화가들은 외부 대상과 그것이 존재하는 실제공간을 화폭에 그대로 옮기는 방법에 몰두했다. 원근법같은 고도로 과학적인 방법론이 도입되었던 것은 2차원의 캔버스 공간에 현실의 대상이 점유하는 3차원의 공간을 옮겨놓으려는 화가들의 열정때문이었다. 19세기 말이후 미술의 재현적 기능은 점진적으로 부정되었고 1910년대 피카소와 큐비스트들의 작업에서 전통적 회화의 관념은 완전히 훼손되었다. 더욱이 사진기가 발전하면서 회화는 환영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해방된다. 브르똥이 예술적 상상력의 무제한적 자유를 찬미하면서 "화가들의 오류는 모델은 외부세계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권리의 포기이다... 오늘날 조형예술은 '순수하게 내적인 모델'을 추구하든지 아니면 사멸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은 재현적 전통이 붕괴된 당대의 미술현실을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내면 세계는 어쩌면 현실의 대상들이 존재하는 외부 세계보다 예술적 소재를 길어낼 수 있는 훨씬 더 풍부한 원천일지도 모른다. 쇼펜하우어의 말을 따르자면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분리될 수 있는 존재자가 아니다. 바꿔 말해 인간은 육체를 입고 있는 영혼이 아니라 육체 그 자체다. 인간의 합리적 정신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인간 본성의 보다 진실한 부분은 수면아래 감춰진 거대한 잠재의식의 영역에 속해 있다. 여기엔 초연한 사유작용 대신 꿈과 환상, 성적 욕망, 정신착란, 원인 모를 공포와 불안이 존재한다. 무엇이 과연 현실인가? 그것은 우리가 명석하고 판명하게 합리적인 사리판단을 함으로써 얻어진 사실인가? 프로이트의 말대로 리비도가 인간 삶의 추동력이라면 "진정한" 현실은 합리적 사유에 의해 파악된 세계에 한정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메레 오펜하임의 <모피의 컵, 컵받침, 스푼>(1936)은 대단히 혐오스럽다. 혐오감과 더불어 우리는 친숙한 일상 소재의 낯선 변형에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사물의 변형은 꿈의 세계에선 오히려 친숙한 것이다. 억압된 욕망의 변덕은 때때로 사물을 과장하고 극적으로 만든다. 매끈한 도자기여야할 찻잔이 털이 숭숭난 모피로 뒤덮혀 있다면? 우리의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말똥말똥한 의식의 근저로부터 길어낸 해학이 단지 낯설지만은 않다. 초현실주의자들이 인간 정신이라는 빙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무의식과 욕망의 영역을 탐구하고 그것의 자동기술적 발현을 기도했던 것은 이른바 현실의 너머에 있는 보다 우월한 현실, 즉 초현실(super reality)의 세계로 들어서기 위함이었고 그곳에서 진정한 현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미술에서 초현실주의는 오늘날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지난 여름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는 머리를 들고 있는 목없는 사내, 벌건 혀를 길게 빼물고 있는 인물군상들 을 그린 그림들과, 머리가 절단된 물고기의 뱃 속에 어란(魚卵)처럼 인형의 얼굴들이 촘촘히 박힌 조각 등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렸다. 문범강의 <I Love You>전이다. 절단된 머리들 - 사람의, 개의, 인형의 머리들 - 은 심지어 엽기적으로 보인다. 하나같이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문범강의 머리들은 성적 존재로서 인간을 상정한다. 문범강은“배고픔과 사랑의 순간에 살갗 세포 하나 하나의 존재를 느끼곤 한다”고 말한다. 그가 자신의 작업에서 발굴하고자 하는 인간의 실존은 육체이자 욕망덩어리 그 자체이다. 인간의 한계, 즉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 "순수한 의식(consciousness)"의 형태로 존재하고자 하는 문범강에게 있어서 "의식"은 "감각과 이성, 그리고 무의식의 총합"으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그의 "순수한 의식"은 헤겔의 절대지와 닮아 있지만, 그것은 인류 정신체계의 정점이라기보다는 초현실주의자들의 탐구대상이었던 무의식의 세계에 더 다가서 있다. TV와 비디오, 영화같은 영상매체가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회화나 조각같은 전통적인 매체로 대중의 시선을 끌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어떤 매체를 사용하는가보다는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가가 작품의 핵심적 요소일 것이다. 문범강이 "I love you"라고 말할 때 "사랑"이란 섹스와 동일시되는 육체적 혹은 관능적 행위이고 바로 그 행위가 인간을 다른 존재자 - 동물과 사물을 포함한 -들과 연결시켜주는 성스러운 지점을 만든다. 문범강에게서 만난 성과 무의식의 세계는 브르똥과 초현실주의자들이 탐구했던 주제가 지난 세기의 해묵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매혹적인 대상임을 새삼 확인시켜준다.

[* 이 글은 원래 덕성여대교지 <근맥> 43권 (2002)에 실었었고, 한동안 제 개인홈페이지에 공개했던 겁니다. 여기 다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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