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미학2 : 미론을 중심으로 간추린 미학사

앞서 우리는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그의 형이상학 체계 내에서 세계는 영원하고 순수한 원형들의 세계로서 이상계와 그러한 이상계의 그림자인 가변적이고 순수하지 못한 현실계로 이분되어 있습니다. 미에 대한 플라톤의 사고 역시 이원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플라톤은 이 현실계에 존재하는 수 많은 아름다운 사물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미, 즉 아름다움 그 자체가 존재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곧 미의 이데아로서, 절대적인 미요, 완전한 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감각적으로 파악되지 않고, '마음으로만' 즉 개념적으로만 파악됩니다. 감각의 옷을 입고 있는 아름다운 사물들의 아름다움은 한 때 존재했다가는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상계의 조건 하에서는 완전하고 완벽한 아름다움을 도저히 찾아볼 수 없습니다.

미의 이데아는 아름다운 사물들에 공통된, 그것이 없이는 아름다울 수가 없는 본질적인 속성입니다. 현실계에 수많은 사물들이 아름다운 것은 이것들의 원인이 되는 아름다움의 원형이 이상계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아름다운 사물들은 - 비록 그것이 감각적인 세계에 속해 있어 불완전하긴 하지만 - 참된 미의 원형을 모방하고 있으므로, 우리에게 미의 이데아를 어렴풋하게나마 일깨워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플라톤은 우리가 현상계에 살고 있으면서도, 미의 이데아를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우리의 영혼이 태어나기 전에는 이상계에 속해 있었고, 그러므로 미의 이데아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레테(망각)의 강을 건너 현실계에 태어나면 이데아의 세계에서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 버리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플라톤은 우리가 본체계를 상기할 수 있다고 하면서, 우리의 영혼이 신체가운데 있으면서 미의 이데아를 직접 파악할 수 있는 길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본래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플라톤은 '에로스'(eros)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있는 신적인 사랑으로, 광기에 가까운 강렬한 파토스적 충동입니다. 이 충동으로 인해 우리는 처음에는 보다 쉬운 대상, 즉 남녀의 신체의 아름다움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점차 분별력을 갖춤에 따라 정신적인 미를 사랑하게 되고, 제도와 법률의 미를 거쳐 학문의 미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순수하고 완전무결한 본질적인 미, 즉 미의 이데아를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론을 "상기설"이라고 하며, 플라톤이 말한 바의 신적인 사랑, 즉 "에로스"를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라고 합니다.

이상에서와 같이 플라톤은 관념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에 대해 언급하는 한편, 아름다운 사물들이 지닌 속성에 대해 논하기도 합니다. 그는 "적당한 척도(measure)와 비례(proportion)를 유지하는 대상은 항상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하고, "적당한 척도가 결여되면 추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 대상에 대해 논하면서 척도와 비례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미를 상당히 수학적인 개념으로 취급하고 있는 셈이지요.

이러한 개념의 미는 보다 멀리 피타고라스에게까지 소급될 수 있습니다. 통상 고대의 수학자로 알려져 있는 피타고라스는 일찍이 음악에 대한 이론을 정초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주의자들은 "질서와 비례는 아름다운 것이고 적합한 것"이며, "수 때문에 모든 사물은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대의 용어 중에 우리가 예술작품에 대해 사용하는 "아름답다" (beautiful)란 말이 없었습니다. 고대 희랍어 중에서 이에 가까운 용어로 볼 수 있는 "칼론" (kalon)이란 술어는 단지 우리가 흔히 아름답다고 말하는 대상에 대해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즐겁게 해 주고, 우리의 감탄을 불러 일으키는 많은 대상에 대해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고대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미는 "유용한 즐거움"이었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미 개념에 보다 가깝다고 하겠는데, 이러한 미 개념은 시각이나 청각에 속하는 형상, 색 또는 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습관과 행위, 법률과 도덕, 과학과 진리에까지 적용되는 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 진, 선, 미의 가치들이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폴리클레이토스 , <창을 멘 사람> BC 450년 경]


다시 피타고라스주의자에게로 돌아가서 논의를 계속하자면, 음악에서 오늘날의 "아름다움"라는 용어를 대신하는 용어는 "하모니아" (harmonia)였습니다. 피타고라스에 의하면, 하모니아는 "수와 척도와 비례에 입각하고 있는 수학적 배열"입니다. 그는 음들의 조화에 주목하고 있는 것인데, 말하자면 현악기의 줄은 그 길이가 간단한 숫자들과 관계되어 있을 때 조화로운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피타고라스는 팽팽한 현의 길이의 비율이 1:2일 때는 8도 음정을, 2:3일 때는 5도 음정을, 3:4일 때는 4도 음정이 됨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음악에서의 미에 대한 사고는 시각예술에로 확대됩니다. 음악의 하모니아에 해당하는 개념이 시각예술에서는 "시메트리아" (symmetria)였습니다. 고대 희랍인들에게 있어서 "시메트리아"는 비례, 곧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간의 균형잡힌 조화로운 배열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메트리아"를 이루기 위해 시각예술에서 지켜야 하는 형식 혹은 일반적 규칙이 "카논(kanon)" (오늘날의 "canon")입니다. 예컨대 신전을 건축하는 데에 있어서 각 부분들 간의, 그리고 각 부분과 전체간의 복잡한 비례 체계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인체 조각에 있어서도 7등신 혹은 8등신 같은 카논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피타고라스에서 유래한 미 개념 - "미는 곧 비례다" - 을 핵심으로 하는 미론을 흔히 "미의 대이론(the Great Theory)"이라고 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이러한 미 개념은 18세기를 거치며 차츰 퇴조하기 전까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광범위하게 인식되어 왔습니다. 미의 대이론은 보통 이성적, 양적 성질, 형이상학적 토대, 객관성, 높은 가치 등의 명제들과 관련되어 이야기되어 왔습니다. 
 
(1) 우리가 감각이 아닌 정신, 즉 이성을 통해 진정한 미를 파악한다고 하는 첫번째 명제는 대이론과 자연스럽게 결합되었습니다. 다시말해 18세기에 이르기 전까지 서구인들은 아름다움이 이성으로 인식되고 판단될 수 있는 속성이라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2) 미가 성질상 수적이라고 하는 피타고라스적 전통에 속하는 명제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대 때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중세의 철학자 그로시테스트는 "모든 복합적인 사물들에서의 구성과 조화는 1,2,3,4라는 네 수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다섯가지 비례에서만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3) 미의 형이상학적 토대는 피타고라스의 수적인 본질에 기초한 우주론과 플라톤의 초월적 이데아론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은 지난 시간에 언급한 바 있죠. 피타고라스는 음악이란 귀로 들을 수 있는 우주의 조화라고 생각했습니다. 별들의 거리는 조화로운 수적 비율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 비율관계가 미시적으로 반영되어 있는 것이 곧 음악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소우주라는 것이었습니다.

(4) 미의 대이론은 미는 아름다운 사물들의 객관적인 속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례나 배열은 그것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지 관조자의 흥미를 끌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일체의 상대주의가 배격되었는 바, 아름다운 비례를 지닌 대상이 때에 따라 어떤 사람에게는 아름답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미의 객관성에의 주장은 일찍이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중세의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에게서도 보여지며, 르네상스 시대의 알베르티에게서도 반복해서 나타납니다.

(5) 마지막으로 미의 대이론은 미가 대단히 가치있는 것이라는 명제와 결합되어 있습니다. 미를 하나의 커다란 혜택으로 보는 사고는 모든 시대에 걸쳐 일치되고 있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인생이 만약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미를 관조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고, 어거스틴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면 우리들은 무엇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상과 같은 5가지 명제와 결합되어 있던 미의 대이론은 앞서 말했듯이 오랜 세월 서구인들의 미의식을 지배했고, 이러한 미 개념이 도전되는 것은 18세기 근대에 이르러서 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미 개념은 고대이래의 대이론과는 상이한 것이 사실이지만,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대이론의 전제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우리의 미의식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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