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예술과 미학1 : 플로티누스의 미학 간추린 미학사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에 이어 이번엔 중세 미학의 토대를 구축했던 AD 3C경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플로티누스의 미학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고대의 예술을 시예술과 회화예술로 대비시켜 보았을 때, 이 두 종류의 예술은 모두 플라톤에 의해 가혹한 비난을 받았던 것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또한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시가 플라톤의 비난으로부터 구제되었던 것을 지난 시간에 확인했지요. 하지만 회화는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철학적 근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을 통해 회화가 그 형이상학적 의의를 부여받을 근거를 얻게 되는 것을 볼 겁니다.

우선 플라톤의 이원적 존재론을 떠올려 봅시다. 그는 세계를 이상계와 현실계로 이분하고, 두 세계가 근본적으로 단절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신플라톤주의자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초월적 이데아를 상정함에 있어서 관념론적인 성격을 띠는 것은 플라톤의 철학과 같습니다만, 플로티누스의 세계에 대한 해석은 플라톤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플로티누스는 가시적 세계의 배후에 그 궁극적 원천으로서 일자(一者, the One)가 있다고 상정합니다. 이것은 일체의 관념과 지식을 넘어서 있는 궁극적 실재로서 선이자 무한입니다. 일자는 마치 광원(光源)과도 같아서 만물은 일자의 빛이 흘러 넘침, 즉 유출함(流出)으로써 존재하게 됩니다. 플로티누스는 <에네아즈(Enneads)>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일자는 흘러넘치고, 그것의 충만함이 새로운 것들을 생산한다." 일자로부터 정신(nous)이 흘러나오고, 다음에는 영혼(psyche)이 흘러나오며, 마지막으로 질료가 흘러나옵니다.

이때 정신이란 것은 사유 혹은 보편적인 지성으로서 이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이성능력입니다. 플라톤의 이데아 세계와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영혼은 정신의 형상을 본떠 자연을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즉, 영혼은 자연 속에서 식물, 동물, 혹은 인간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질료는 광원인 일자로부터 가장 먼 위치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근본적으로 정신화를 거부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계

현실계

  [플라톤의 이원론]

일자

정신

영혼

질료

  [플로티누스의 일원론]

이처럼 일자의 흘러 넘침을 통해 세계가 형성된다고 보는 플로티누스의 세계관을 흔히 유출설이라고 합니다. 일견 플라톤의 존재론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지만, 그는 일자의 빛 혹은 속성이 만물에 깃들여 있는 것으로 파악함에 있어서 플라톤과는 달리 일원론적 세계관을 견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상기"에 대해 말했던 것과 유사하게 플로티누스도 유출이라는 하강운동과 반대방향의 상승운동에 대해 언급합니다. 다시 말해 일자는 인식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자는 이성적 지식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정신이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연합 혹은 황홀경(ecstacy)에서만 알려질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플로티누스의 철학은 다분히 신비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페이디아스, <아테나> BC 5C 중반]

만물이 단일한 일자로부터 생성된다고 보는 플로티누스의 관점은 예술과 예술가들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합니다. "페이디아스는 비가시적인 것을 따라 제우스를 만들어 냈고, 제우스가 우리 눈 앞에 나타나기를 원한다면 즉시 그가 모습을 나타낼 수 있도록 그를 만들었다." 플로티누스의 예술가는 세계를 단순한 모방자가 아닙니다. 예술가는 사물들의 원리에로 복귀하여 결핍된 것을 채워주는 역할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미의 이념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미의 이념이 질료화되어 순수한 사유 세계로부터 공간의 세계로 투사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자에서 가장 먼 존재인 물질을 이념에 참여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예술가인 것입니다.

앞서의 인용문에서 플로티누스의 페이디아스에 대한 평가는 화가나 조각가에 대한 플라톤의 평가와 매우 대조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플로티누스의 이론은 형상이 질료 안에 있다고 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플라톤의 것에 접붙인 결과입니다. 그런데 플로티누스에 의해 예술작품이 이념, 즉 정신의 위치로 격상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플로티누스도 초월적인 존재, 즉 일자를 상정하는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페이디아스의 제우스신상에 깃든 아름다움은 미의 이념에 대한 어슴프레한 힌트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제우스신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돌이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 - 혹은 art - 이 그것에 부여한 형상때문인 것입니다.

이 형상은 그것이 돌에 부여되기 전에 예술가의 마음 안에 존재합니다. 하지만 미의 이념이 예술가의 마음에 거주하다가 돌로 옮겨가는 것은 아닙니다. 돌에 주입되는 것은 보다 큰 미에서 연유한 작은 미일뿐이며, 돌이 기술에 복종할 때만 가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자연의 미가 이념의 빛 아래 있긴 하지만, 그 근원보다는 필연적으로 열등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얘깁니다.

예술작품의 미가 여전히 이념과는 먼 것이 되고 있긴 하지만, 플로티누스에게서 우리는 회화가 플라톤의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술작품은 불완전하게나마 이념에 참여하는 존재가 되었고, 예술가는 저항적인 질료에 이념을 투사하는 성스러운 과제를 담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플로티누스의 예술관은 중세 미학에 거의 그대로 전수됩니다. 중세의 교부철학자들은 플로티누스의 일자를 신(神)으로 대체하여, 플로티누스의 철학을 기독교의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사용합니다. 예컨대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과 세계 사이에는 중재적인 어떤 존재자도 없다고 봅니다. 기독교의 신은 무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였습니다.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세계의 모든 만물 역시 신의 개입 없이 존재하게 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플로티누스가 "미"에 대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알아 봅시다. 앞서 플라톤의 미론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지만, 미의 대이론은 고대에서 발생,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됩니다. 미의 대이론을 기억해 봅시다. 이것은 미를 "수, 척도, 비례"에서 찾는 수학적인 개념에 기초한 미론입니다.

플로티누스도 미가 부분들의 비례와 배열에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존재하는 미의 전부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만약 그렇다면 복합적인 사물만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빛, 황금, 별 등과 같은 단순한 사물들은 복합적이지 않지만 명백히 아름답습니다. 또한 전체의 미는 부분, 즉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에 미를 비례에서만 찾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더구나 비례의 아름다움은 비례자체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비례를 통하여 스스로를 표현하는 영혼, 즉 비례를 '조명해주는' 영혼으로부터 생겨난 것입니다.

플로티누스를 신봉하던 5세기의 위-디오니시우스(pseudo-Dyonysius)는 "미는 비례와 광휘속에 존재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플로티누스의 견해를 보다 함축적인 공식으로 표명한 것이죠. 이 공식을 13세기의 스콜라 철학자들이 이어받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의 세가지 조건을 논하는 가운데 "완전성"과 함께 "적합한 비례와 조화"와 "밝음"(clarity)을 들고 있습니다. 즉 플로티누스 이후 중세 미학에서는 비례와 함께 그것을 보충해주는 요소로서 "밝음" 혹은 "광휘성"이 추가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중세인들의 독특한 미의식의 반영이라 볼 수 있겠는데, 중세인들은 신의 속성을 태양과 같은 "밝음"으로 상정하고 그 천상의 "밝음"과 유사한(analogous) 속성을 지닌 빛나는 물체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중세인들이 비례에 밝음을 첨가시켰다고 하여 미의 대이론이 위협받은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르네상스 시기에도 고대와 마찬가지의 미론이 유지됩니다.


덧글

  • 학생 2015/05/16 18:19 # 삭제 답글

    미학수업들 듣다가 이해가 안되는 것이 있어서 검색하다 들어왔는데 모든 게시물들 설명이 정말 친절하고 세세하네요. 큰 도움이 됐습니다.
  • mijung kang 2015/06/01 18:51 # 답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오래전에 쓰다가만 미학사라서 아직 숙제를 다하지 못한 느낌이에요.ㅎㅎ
  • 강정모 2016/01/26 16:17 # 삭제 답글

    감사합니다. 잘 이해 했어요^_^
  • 강정모 2016/01/26 16:27 # 삭제 답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일자는 분명 존재 함에 있어 유출을 통해 질료의 세상까지 내려오게 된다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자가 없다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그 일자의 영향력이 점차 약해지기는 하지만 분명 정신과 영혼이 영향을 받으니 일자와 질료 사이에 영향을 끼치는 중재자적 역활을 하는건 아닌가요?? 이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좀 알려주실수 있을까용
  • 강정모 2016/01/26 16:36 # 삭제 답글

    아 이해했어요 ^_^ 어차피 영향을 받는 것도 일자의 영향이니 중재하는 존재는 없는게 맞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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