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_그림, 바르트를 만나다 Art criticism

["이응노-바르트 전," 이응노미술관, 2003년 6월 5일~ 8월30일]

[이응노, <COMPOSITION> 천에 채색, 1974]


비오는 일요일, 처음으로 이응노미술관을 찾았다. 평창동 주택가에 예쁘게 자리잡고 있는 미술관 입구에는 '이응노 / 롤랑 바르트' 란 전시 제목이 커다랗게 써 있었다. 이응노와 바르트라... 지레짐작으로 바르트의 기호학으로 이응노의 70년대 미술을 해석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전시장에 들어서고 나서 나는 바르트가 해석의 도구가 아니라 감상의 대상임을 깨달았다. 그다지 작지 않은 공간이 협소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응노의 70년대 문자추상화가 전시장 벽을 가득 메운 가운데, 그림이 걸리지 않은 벽면에 바르트의 문장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응노와 바르트였다.

이응노의 문자추상화의 역사는 60년대 '서예적 추상'에서 출발한다. 60년대는 이응노가 프랑스에 정착하여 꼴라쥬와 타시즘(Tachisme), 앵포르멜(Informel) 같은 그곳의 미술을 한창 실험하던 시기였다. '서예적 추상'에선 한지에 번지는 수묵의 효과를 한껏 살린 자유롭고 활달한 필선이 돋보인다. 이 시기 이응노의 화면은 피에르 술라쥬나 한스 하르퉁 등 앵포르멜 작가들의 서체적 추상과 상당히 유사해 보인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응노는 그림으로 화한 문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는 것과 술라쥬나 하르퉁은 단지 동양의 서체를 흉내내고 있었다는 것. 어쩌면 이 차이는 미묘한 것이다. 이응노가 문자를 변형시켜 만들어낸 이미지는 원래의 기의(signifi )에서 완전히 해방된 기표(signifiant), 즉 단지 기표뿐인 기호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기표-기호를 하늘천 따지도 모르는 서구의 화가들이 사용했을 경우에도 우리는 동양의 서예를 느낀다.

이응노의 개성이 확고해진 건 70년대이다. 유동적이고 자발적인 앵포르멜적 추상을 벗어나 이응노는 문자 자체에 주목하면서 견고한 형태의 '문자추상'의 단계로 이행한다. 군집을 이룬 문자들은 문자인 동시에, 원래의 문장 구조에서 탈피하여 자유롭게 재배치된 이미지들이다. 한자와 상형문자의 조합처럼 보이는 이미지의 군집은 때때로 인물 군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문자인가, 이미지인가? 이응노의 작품 앞에 선 관객은 누구든지 전체 이미지를 '볼' 수밖에 없다.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그의 작품을 순전히 이미지로 볼 수밖에 없지만, 그것이 문자들의 조합이라는 걸 안다. 한자에 익숙한 관객은 이응노의 화면에서 때때로 문자를 발견하지만, 그것을 읽는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전체 문장에서 한두 글자를 읽는다고 해서 의미가 파악되지도 않을뿐더러, 이응노의 작품은 일차적으로 강력한 이미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응노의 '문자추상'을 말(word)이라고 혹은 그림이라고 단정짓는 건 왠지 부족하다. 그것은 말인 동시에 그림이다.

대부분 <컴포지션>이란 제목이 붙어있는 문자추상화의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장의 변형'에서는 텍스트의 순서와 문장의 규칙에서 해방된 문자들이 평면 위에 자유롭게 배치되고, '문자의 변형'에서는 한자, 한글, 갑골문자, 알파벳 등이 조형적으로 재구성된다. 또한 문자추상은 '회화의 탈피'에서 캔버스, 한지뿐만 아니라 펠트천, 은박지, 인화지 같은 다양한 재료의 조형적 실험과 함께 나타난다. 전시장에는 이응노의 크고 작은 문자추상화들과 더불어 바르트의『텍스트의 즐거움』,『기호의 제국』등에서 발췌된 문장들이 한글과 불문으로 벽면 곳곳에 인쇄되어 있다. "모든 형태는 또한 가치이다. 이런 이유로 언어와 글의 양식간에는 형태의 또 다른 현실의 여지가 있다... 기호는 다른 기호의 얼굴 위에 중첩된 또 하나의 얼굴이다." 현대의 많은 기호학자들은 전통적인 의미 중심의 기호학에서 벗어나 의미작용(signification)에서의 기표의 우위를 역설한다. 특히 바르트는 기표의 역동성을 부각시키면서 모든 방법론에서 벗어난 열린 글읽기 혹은 글쓰기를 제안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텍스트에 고정된 의미라는 건 없으며, 대신 독자가 구축하는 다수의 글읽기가 있다. 독자는 단지 의미를 소비하기보다는 텍스트에 협조하여 의미를 생산하는 주체다. 이러한 의미생성의 메커니즘에서 모든 형태는 의미의 껍데기가 아니라, 하나의 강력한 가치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기호학을 통해 이응노의 70년대 문자추상화에 접근하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의 '문자추상'은 서예의 형상성을 극단으로 추구하여 그것의 언어적 기능을 해체해 버린 말_그림이다. 그것은 언어적 기호와 이미지 기호 사이에서 새로운 기호세계를 탐색한 실험의 결과다. 그러나 '문자추상'의 의의를 파악하는 것과 <이응노 / 바르트>전을 감상하는 것은 별개의 일로 보인다. 바르트는 왜 이응노와 함께 전시되어야 할까? 이응노가 '문자추상'에 주력하던 70년대에 바르트가 대표적 저작들을 내놓았고, 양자가 공통적으로 언어기호의 기표에 주목하여 새로운 글쓰기와 새로운 그림을 제시해서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만남은 지극히 표피적인 수준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응노가 문자 기호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기호학을 도입시킨 직접적 계기라면 이것은 기호학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라 할 수 있다. 언어는 가장 대표적인 기호체계다. 하지만 기호의 세계는 언어보다 훨씬 방대하다. 바르트의 포스트모던한 텍스트론은 비단 문학텍스트나 이응노의 '문자추상'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기호해석에 적용된다.

이러한 의구심을 일단 제쳐둔다 하더라도, 바르트가 이응노와 함께 어떻게 감상될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우선 전시장 벽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바르트의 문장들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궁금하다. 미술관을 찾은 관객들 중 몇 명이나 바르트의 문장들을 꼼꼼히 읽을 것인지, 또 그중 몇 명이 바르트와 이응노를 연결시켜 이해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응노의 80년대의 군상시리즈와 달리 상대적으로 인지도나 인기가 떨어지는 70년대 문자추상화를 바르트의 기호학을 빌어 이해의 지평을 넓히려는 것이 본 전시의 기획의도였다면, 그 취지는 별로 성공적으로 실현된 것 같지 않다. 만약 바르트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고, 더 나아가 기호학이 일반 관객들에게 너무 난해하고 생경하게 비춰졌다면 말이다. (교수신문, 2003년 6월 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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