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학자 왈) 상징은 자연적, 기호는 자의적? C.S.퍼스와 기호학

집에서 뒹굴며 '소쉬르가 정말 상징을 그렇게 생각했을까'하는 생각을 얼핏 했다. 그럼 그렇지, 감기가 그렇게 쉽게 떨어질리야. 지난 주에 조신하게 지낸 덕분에 몸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다. 아~ 지겨운 감기여.

갑작스런 궁금증은 지난 주에 철학아카데미에서 강사선생님이 <일반언어학강의> 설명하시다가 "상징은 자연적, 기호는 자의적"이라고 하신 말씀에서 비롯됬다. 할튼 아직도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하는데, 불란서에서 공부하신 선생님이 근거없는 말씀을 하실리도 없고, 더욱이 언어학 전공이신데...

연기가 나는 건 불이 났다는 것의 신호다. 퍼스는 이것도 기호로 봤다. 근데 퍼스는 이런 종류의 기호를 지표라고 했다. 번개는 천둥의 지표다. 저번 미술분과에서 선배들이 도상, 지표, 상징을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는 걸 들었다.

도상- 닮음; 지표-인과관계; 상징-관습

'고렇게 간단한 게 아닌데...' 속으로만 생각했다.

퍼스가 자연현상조차도 기호작용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해 난 '이 사람 디게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표의 카테고리에는 지시대명사, 인칭대명사까지 들어가니, 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가? [* 지표는 이처럼 느슨하고 모호한 개념이지만, 도상, 지표, 상징의 삼분법 중 가장 독창적인 기호개념임다. 그래서 기호학자, 예술비평가, 미술사가들 뿐만 아니라 언어철학자들, 논리학자들도 index, indexical이란 개념으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논문은 넘넘 많습니다.]

그런데, 언어학자들 중에 자연현상을 '상징'이라고 봤던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나로서는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퍼어스는 과학자, 아니 과학철학자였다고 치고, 언어라는 인위적인 소통체계를 다루는 사람들이 '상징'이란 말로 자연현상을 지칭했을까?

궁금하다. 할튼 소쉬르는 그런 말 하지 않았다. "천칭은 정의의 상징"이다.[*2003년 당시엔 <일반 언어학 강의>를 제대로 읽지 않고 썼습니다. 소쉬르가 그런 말을 했더군요. 의태어, 의성어조차 기표-기의 관계가 자의적이라 하는 소쉬르가 이런 종류의 '상징'을 '자연적'이라 하는 것은 영 이상합니다. 어쩌면 바이와 쉐쉬에의 실수였을 지도... ^^ 아, 근데 소쉬르가 "상징이 자연적"이라 했다면, 그는 상징이 자연기호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상징은 기호와 달리 순전히 '자의적'이지 않고 '어떤 동기가 있다(motivated)'는 의미로 말한 겁니다. 밑에 코멘트 참조하세요~]

우린 상징이란 말을 넘 많이 쓴다. 마릴린 먼로는 "섹스 심벌"이다. 기호논리학이라 번역하는 "symbolic logic"에서 symbol은 각종 부호들이다. 대상과 관계를 나타내는. 그래도 일상적으로 '번개는 천둥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4/23/2003, 프리첼 마그리트 컴티에 실었던 글 ; * 최근에 "지표"에 관한 총체적인 설명 및 적용을 하는 논문을 한편 썼음다~ 속이 후려언 하네요...^^]


덧글

  • 구상인 2010/05/16 11:52 # 답글

    구체적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소쉬르의 이론에서의 symbol이란 단어와 퍼어스, 혹은 리차즈와 오그덴이 이야기하는 symbol은 기본적으로 다른 개념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칠게 보면 영미권 이론에서의 symbol의 용례는 기본적으로 자의적인 속성을 지니는 반면에 소쉬르에서 출발하는 프랑스어권 이론에서는 symbol은 자의적인 요소가 아니며 signe(기호)가 그런 자의적인 속성을 지니는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힌 내용만 보면 두 이론에서의 symbol(상징)이라는 단어의 맥락을 분명히 구분하고 계시는지 여부를 잘 확인할 수 없지만 혹시 동일한 용어로 인해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닌가 해서 주제넘게 한 마디 적고 갑니다. 혹시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라면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 jemimah 2010/05/16 19:45 # 답글

    네... 저도 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때 (2003년당시) 저는 철학아카데미에서 소쉬르와 구조주의 관련 강좌를 듣고 있었는데 (제겐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사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끄적거렸던 겁니다.

    님과 조금 다르게 정리하는 부분이 있다면, symbol은 어느 문화권에서든지 or 퍼스에게든 소쉬르에게든 "자의적"입니다. 근데 소쉬르는 기호일반을 자의적이라 봤는데, 그는 언어기호에 제한된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가 흔히 쓰는 용법으로 "천칭은 정의의 상징"이란 의미에서 symbol을 썼습니다.

    반면 퍼스-모리스-리차즈&오그덴 등의 영미권에선 소쉬르식의 '기호' 즉 관습이나 규칙성에 의존하는 기호의 종류를 상징이라 하지요. 퍼스에게 기호는 상징 외에도 도상, 지표가 있고, 여기엔 자연기호도 포함됩니다.
  • jemimah 2010/05/17 06:33 #

    왜 그때 선생님한테 물어보지 않았었나 쫌 후회하는데... 제 짐작으로는 (소쉬르식으로) "천칭은 정의의 상징" 혹은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 할 때, 상징은 자연적이라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이걸 소쉬르가 자연적이라 말했는지는 확인해봐야 겠군요.) 뭔가 자연적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거 같은데, 제가 보기엔 "아니다"가 맞슴다... 서구문화를 모르는 원시부족에게 천칭이나 비둘기를 들고가서 물어보면 각각이 정의나 평화의 (자연적인) 상징이라 할까...? 전 의문스럽거덩요... ^^
  • 구상인 2010/05/17 10:18 #

    저도 '일반언어학 강의'를 읽은지 하도 오래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소쉬르가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는 의미로 상징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듯한데요...
    어쨌든 계보를 달리하는 두 기호학의 개념과 용어를 동시에 소개하고 이들 개념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 주는 입문서가 없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습니다. 소쉬르식의 기표-기의 개념과 리처즈-오그덴의 삼각도를 유기적으로 통합해서 이해하고 싶었는데, 서로 다른 계보를 지닌 기초개념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 jemimah 2010/05/17 13:25 # 답글

    소쉬르가 상징을 그렇게 봤다고 어디선가 읽은거 같은데, 다시 확인을 해보죠. 마침 내일 소쉬르 강의를 해야해서 짐 자료찾고 있어요...
    구조주의 + 리처즈-오그덴 삼각도는 대니얼 챈들러가 통합해서 제시하고 있지 않은지요? 웹상에 공개되어 있는데 함 확인해보셔도 좋을 듯.. 그리고 요즘 기호학 관련 입문서와 자료들이 좋은게 꽤 많이 나온 거 같은데.. 구조주의 관련 레퍼런스 정리되면 함 올려볼께요. <초록상자>에요~~ 코멘트 감사~
  • kungfupanda 2010/06/02 18:14 # 답글

    어제 수업시간에 소쉬르를 읽으면서 학생들과 이 문제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일반 언어학 강요>에서 소쉬르가 "천칭은 정의의 상징"이라 하면서 상징은 '어느 정도' 자연적이고, 기호처럼 자의적이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발이와 쉐쉬에 버전)

    우리의 결론은 소쉬르가 말한 상징이 natural하다는 말의 의미는 motivated로 보자는 거였죠. 알다시피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가 어떠한 동기(motivation)도 없이 자의적으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인데, 가령 자연기호인 북극성을 북쪽의 지표로 보는 이유는 어떤 동기가 있어서라 하겠죠. 다시 말해, "천칭은 정의의 상징"이라 할 때, 천칭의 어떤 속성 때문에 정의의 상징이 되므로 이 둘의 관계는 무연적(unmotivated)라고 할 수는 없죠.

    하지만, 퍼스 전공자인 제가 보기에 "정의의 상징으로서 천칭"이나 "평화의 상징으로서 비둘기"를 자연적 기호라 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상이나 지표처럼 '자연적으로' 다시 말해 그 문화권에 속해있지 않은 어떤 사람이라도 알아볼 수 있는 종류의 기호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흔히 이런 식의 '상징'은 비유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은유, 직유, 제유, 환유 등에 의존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다시 말해 천칭을 통해 우리는 정의의 한 속성을 상징하므로, 천칭은 정의에 대한 환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처럼 비유법에 의존하는 의미작용을 '자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참고로 퍼스에게 있어서 은유는 일종의 도상이지만, 그것은 하위도상 중 삼차적인 것으로서 (관례적 기호인) 상징의 일종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퍼스에게 있어서 상징은 소쉬르의 기호와 동일합니다.

    이상은 (소쉬르에 이의제기하는) 강선생의 의견이었습니다~~
  • 구상인 2010/06/07 00:21 # 답글

    1. 어디까지나 이론적 가정인데요, 특정 문화에 한정되지 않는 보편적인 비유의 틀이 존재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motivated로 봐도 좋지 않을까요? 그런 보편적인 비유의 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 가물가물한 기억은 믿을 게 못 되는군요. 저도 언어 기호에 관한 이해가 일차적 관심이었으니 부차적인 내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에서 사라져 버리네요.
    3. 미학이나 미술비평에서는 소쉬르의 이론에서 주로 어떤 부분에 관심을 기울이는지 궁금합니다.
    4. 마지막으로 추가답변에 감사드립니다. 위의 내용에 대한 댓글은 달아 주시면 고맙지만 안 해 주셔도 상관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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