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exuality Art criticism

[* 아래 글은 제가 프리첼 컴티 "마그리트"에 2003년 5월 25일에 올린 겁니다. 그때 (지금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되신) 이지은선생님의 매튜바니의 크리매스터 시리즈에 대한 발표와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보고 와서 쓴 글인데요, 곧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를 한국에서 또다시 공연할 거란 소식에 반가운 맘으로 올립니다. 또 보러갈까 싶기도 하네요. ^^]

[매튜 본, <백조의 호수> 1995년 초연]


최근 본 두 작품은 모두 성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와 매튜 바니의 "크래마스터 사이클"... 그러고 보니 둘 다 매튜의 작품이군요. ^^

활발한 몸 담론과 성 담론 위에서 전개되어온 포스트모던 문화. 상투적인 설명법을 따르자면, 포스트모던한 의식은 종래의 이분법적 젠더 개념을 붕괴시킵니다. 예술에서 호모-레즈비언 문화, 퀴어 등에 대한 언급이 자주 이뤄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해야겠죠.

매튜 본의 작품은 집에서 디비디로 볼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더군요. 모처럼 맘먹고 S석에 앉았지만 무대에서 멀었기 때문에 배우들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습니다만, 화려한 무대의 스펙타클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정말 좋았습니다. 매튜 본을 보기 이전엔 "남자 백조"가 어떨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죠. 남자와 남자의 춤.... 아직 낯설죠. 그러나 역시 예술적 창조력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대한 능력인가 봅니다. 깃털이 달린 큐롯을 입은 남자 백조들은 정말 백조를 형상화한 것 같은, 역동적이면서도 우아하고 멋진 모습들이었고, 무리를 지어 뛰어다니는(날아다니는 것 처럼 보이고 싶었겠죠?) 뭇 백조들은 일군의 조류들이었습니다. 백조의 독무도 충분히 매혹적이었구요, 백조와 왕자의 춤도 거부감이 들지 않았을 뿐더러 '아름다웠습니다...'

어떨 땐 왕자가 백조를 들어주고, 또 어떨 땐 백조가 왕자를 안아주고... 제가 게이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이런 류의 작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여기선 백조를 왕자의 '성적 환상'으로 처리해서 그랬을까요? 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결국 왕자는 어머니의 품 대신 백조의 품 속에서 안식을 찾습니다만, 저의 상식으로도 호모-레즈비언 관계에서는 남/여의 성차가 무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죠.

[* 잘 알려진 사실이긴 한데, 매튜 본의 작품은 영화 <빌리 엘리엇> 땜에 더 유명해졌죠?]

[매튜 바니, <크리매스터 V> 2002]

어제 현대미술사학회에서 비록 슬라이드 컷으로나마 매튜 바니의 "크리매스터"를 보았고, 전공자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덕분에 크리매스터에 대해 품고 있었던 궁금증도 조금 풀렸습니다. 매튜 바니가 크리매스터 전편을 '사이클'로 부른 것은 남성성에서 여성성으로, 또 여성성에서 남성성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영속적인 열망을 의미하는 거랍니다. 등장인물들은 모두 성별이 모호합니다. 양성구유로 보이기도 하고요. 남성이 여성으로 전환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그 역도 마찬가지지만) 완전성(wholeness)에로 회귀하고자 하는 열망이라고요.

양성을 갖춤으로써 완전성을 획득한다? 흠... 야튼 '회귀'라는 말을 썼던 것은 발표자가 - 작가의 변을 토대로 - 앞서 말한 열망을 라깡이 말하는 전오이디푸스(pre-oedipus)단계로 돌아가고자 하는 충동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전오이디푸스 단계는 당연히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가 자각되기 이전의 단계죠. 라깡의 심리학적 용어로는 거울단계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거울단계는 자아와 타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어머니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성적 정체성이 모호한 단계라 할 수 있죠.

매튜 바니는 오이디푸스, 전오이디푸스, 혹은 거울단계도 모두 거슬러올라가 'embryo'로 회귀하려는 열망에 대해 말합니다. 임신후 6주 이내의 태아들은 아직 성별이 결정되지 않은, 그렇지만 남아건 여아건 모두 x 염색체를 갖고 있기에 잠재적으로 여성인 상태로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니는 어머니에게로의 회귀, 여성으로의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럼으로써 상실했던 완전성을 회복하려는 겁니다.

이런 식의 설명은 매튜 바니가 어찌되었든 간에 '남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구요, 그래서 발표자는 여성성을 지향하는 혹은 성정체성의 붕괴를 기도하는 남성 예술가의 한 사례로 바니를 고찰하고, 바니의 시도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리더군요. 어떤 의미에서 실패냐면, 성의 이분법을 파기하고자 했으나 바니가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이분화된 성 구도라는 점이죠.

논문 전문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발표만 들은 거라, 제대로 옮겼는지 모르겠네요. 영상자료도 충분히 보았다고 생각되지 않고요. 하지만 크리매스터에 대해 궁금했던 몇가지가 풀렸습니다. 가령, 어떤 식으로 성 정체성에 대해 다루었는지, 왜 마술사 후디니가 등장하는지, 의족을 한 사람들은 정말 불구자들인지....

매튜 바니의 시도 중 하나는 인간 신체의 한계에 도전하는 거랍니다. 의족을 하고도 기적적인 스코어를 냈던 모 미식축구선수, 온 몸을 쇠사슬로 묶은 채로 강물에서 탈출하는 마술사 후디니, 두 다리가 절단되어 의족을 한 멋진 몸매의 패션 모델[cremaster V].... 사진이미지로 보면서 저는 그런 인물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했었거든요.

장국영이 죽은 지 얼마 안되는 시점에, 섹슈얼리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섹슈얼리티를 넘어서서 우리가 도달할 곳은 어딜까요? 남자가 여자가 되고 또 여자가 남자가 되고.... 끝없는 변이, 변태(metamorphosis)로 존재하는 걸까요? 항상 변하고 있는 중인 잠재태의 남자와 잠재태의 여자로...?

[* 매튜 바니는 "어둠 속의 댄서"의 배우이자 가수, 비욕의 남자친구임다. 비욕이 그의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 둘이서 공동작업 많이 했죠.. 글고 "cremaster"는 고환을 수축시키는 근육이라는군요. 의대출신 매튜 바니가 만든 말입니다. 추우면 움츠려드는 근육... 궁금하신 분들 요기를 함 가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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