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가 시들해진 이유들 film/media

2008년경 나는 <막돼먹은 영애씨>에 옴팡 빠져있었다. 당시 난 대구에서 큐레이터(라기보다는 공무원)를 하고 있었는데, 주말에 서울에 올라오면 소파에 누워서 <영애씨>의 재방송을 즐겨 시청하곤 했다. 간혹 릴레이 재방을 해줄 땐 거의 하루종일 <영애씨>를 보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남편은 혀를 끌끌 찼었다. 또 저거야? 뭐 저런 천박하고 시시껍절한(?) 코믹 드라마에 눈을 떼지 못하냐는 식이었다. 남편은 대중문화를 폄하하는 고급취향의 소유자는 아니다.(사실 정확히 반대편이다.) 다만, 주로 이영애(김현숙 분) 주위에서 벌어지는 너절한 일상들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가 자칭 페미니스트이자 맑시스트인 무의식적 마쵸에겐 너무 사소해 보였던 것 같다. 암튼 남편의 비아냥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심지어 인터넷으로 지난 시즌들을 찾아볼 정도로 <영애씨>를 사랑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영애씨>에 대한 나의 열정이 사그러들고 말았다. 시즌7이 시작한 이후 난 <영애씨>를 보는 일이 더 뜸해졌다. 왜였을까? 너무 바빠서 티비 볼 시간이 없어서? 단언컨대, 그건 아니다.(솔직히 바쁘긴 하다. 하지만 나보다 바쁜 사람은 쌔고 쌨다. 그리고 난 아무리 바빠도 티비에 열광하는 테순이 중 하나다.) 그럼 왜? 나는그 이유를 내가 아니라 <영애씨>에게 돌리고 싶다. 

그 원인은 우선 우리의 영애씨가 너무 이뻐졌다는데 있는 것 같다.  지나친 다이어트 열풍이 대한민국 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젯거리인 요즘, 영애씨의 솔직하다 못해 배째라식의 주체적 생활방식은 차라리(?) 신선했다. 일부 여학생들의 영양실조를 초래하는 다이어트 트렌드는 지나친 외모지상주의가 낳은 폐해고, 그런 외모지상주의는 인터넷의 보급과 더불어 가속화된 시각중심주의, 즉 눈에 보이는 이미지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고방식이 초래한 결과다. 

언젠가(작년이었나?) 신문에서 프랑스에선 이미지조작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려 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사실 아무리 완벽한 미인도 약간의 결점은 있는 법. 더구나 늘 날씬한 몸매를 유지한다는 것은 제아무리 몸짱스타라 해도 아주아주 힘들다. 그래서 요즘 패션사진은 물론, 다큐사진조차도 모델의 결점을 수정하기 위한 손질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암튼, 프랑스 당국은 놀라운 합성기술 때문에 표준미달의 몸매를 선망하는 불필요한 다이어트 유행이 생겨났다고 본 것이다. 
사설을 접고 다시 <영애씨>가 시들해진 이유로 돌아오자. 아무 개념 없이 밤새 술을 퍼대고 안줏발을 세우는 영애씨, 튼실하다 못해 불거져 나온 뱃살과 건장한 체격, 남자 못지 않은 체력을 과시하는 영애씨는 요즘의 트렌드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막무가내 아가씨고, 그것이 영애씨의 매력이다. 솔직히 누가봐도 영애씨는 아줌마의 아우라가 눈부신 30대여성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아이가 둘은 있을 법한  그녀가 아가씨로 불리는 이유는 '단지' 미혼여성이라는 것이다. 30을 넘겨 시집도 못가고, 요즘같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날씬하지도 않은 노처녀는 코메디 주인공으로 딱이다. 사실 그녀의 외모는 지극히 평범하다. 티비에서 주로 비춰주는 화려한 외모의 여성스타들은 대체로 20대초반일 뿐더러, 같은 나이라도 그런 미모의 소유자는 통계적으로 지극히 소수에 속한다.

여하튼, 일반적인 티비드라마 주인공과는 아주 많이 거리감이 있는 우리의 주인공, 영애씨, 그녀의 입은 또 얼마나 걸은가? 거침없는 직설화법에 때로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 영애와 영애엄마,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친근감이 절로 솟는다. 또한 두 사람은 보통 여자들보다 힘도 좋다. 동네 양아치 쯤은 우습게  처리하는 우리의 영애씨! 아줌마급 노처녀가 별로 '사릴' 몸도 없다는 남성적 시각의 코믹 설정일 수 있으나, 여성 시청자로선 왠지 통쾌하고 어찌보면 현실적이다. (사실 비현실적이다. 함부로 십대 양아치들이랑 붙는 일은 대체로 피해야 할 일 아닌가? ㅋㅋ)  tvN이 아무리 대기업의 자회사라 해도, 역시 케이블은 케이블이다. 공중파에서 감히 다룰 수 없는 내용, 입에 올릴 수 없는 대사를 날 것 그대로 싱싱하게 올려서 성공한 방송이 <영애씨>외에도 동사의 <롤러코스터>라 하겠다. 
그러던 영애씨가 시즌 6이후 누가봐도 근사한 외모를 지닌 남정네를 하나도 아닌 둘이나 끼고 삼각관계를 누리고 있다. 이영애가 장동건을 만나는 건 당연한 일. 극중 영애가 동건과 맺어질 운명이란 건 그들의 이름이 애초부터 암시하던 복선이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 주변엔 늘 장동건 말고도 멋진 남성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들은 어김없이 영애씨와 핑크빛 무드를 조성하곤 했다. 영애씨는 초기 시즌에도 김원준이라는 연하의 꽃미남과 연애를 했다. 사장(유형관)이며 과장(윤서현)이며 직장동료(정지순)까지 째째하고 비굴한 남정네라는 너무나 현실적인 캐릭터의 소유자인 반면,  부잣집 귀공자 김원준은 넘 튄다 싶을 정도로 근사했다. 그래도 우리의 여주인공한테 서현이나 지순을 갖다 붙일 수 없으니, 역시 원준이 짝이 되었으면 바라는게 시청자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헤어지고 만나기를 반복하던 영애씨와 원준군은 결국 원준이 정략결혼을 하면서 최종적으로 헤어지게 된다. 첫번째 헤어짐은 원준이 옛 여자친구를 잊지 못해서, 두번째는 영애씨가 지나치게 원준에게 집착해서였는데,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처음부터 설마설마하다가 결국 "그것 봐~"가 되어버린 비교적 현실적인 거였다. 반면 시즌5부터 등장한 장동건과의 러브라인이나 시즌6부터 등장한 산호와의 묘한 관계는... 모랄까? 너무 환상적이어서 되려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영애씨>에서 작품의 질을 논한다는 게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과연 작품이라 해야하나 묻는이도 있을 것이다. 근데, 박성봉선생님 가라사대 "대중예술도 엄연히 예술이고, 대중예술의 미는 곧 통속성"이다. (선생님의 카리스마를 떠올리며 '가라사대'가 저절로 나왔다. 아, 난 박샘한테 배운 적이 없다. 설대에서 동료강사로 계실 때 명성만 들었을 뿐...) 한마디로 요즘의 <영애씨>에선 통속성, 더 정확히 말해 키치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아니, 정정하자. 혹 남아 있더라도 예전 같지가 않다. 

이게 바로 <영애씨>가 시들해진 결정적인 이유인 것 같다. 영애씨의 외모와 행동거지가 내뿜는 키치성 외에도, 드라마 <영애씨>가 초반에 갖고 있던 구성상의 키치성도 요즘 많이 약화된 것 같다. 홈비디오 느낌을 내려고 그랬는지 시즌초반 <영애씨>는 다소 아마츄어틱하게 흔들리는 화면들로 채워졌었고 진행도 세련된 일반 드라마와 차별화시키기 위해 일부터 촌티를 자청한 것 같았다. 그러던 것이 요즘엔 지상파의 멜로드라마와 유사해지는 것 같아 아쉽고 안타깝다. 한마디로 좀 싱거워졌다. 

평범하게 생긴 힘쎄고 일잘하는 노처녀, 이영애. 그녀가 점점 더 이뻐지고 멋진 왕자님을 만나야할 이유는 뭘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이 아니어서?  뿐만 아니라 여자들이 드라마를 보는 이유가 바로 현실에선 만날 수 없는 꽃미남과 이뤄진다는 환상을 즐기기 위해서라서? 그런 드라마는 이미 많이 나왔다. <내이름은 김삼순> 하나로도 충분했다. 우리의 <영애씨>가 <김삼순>이 되야할 이유는 별로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웹서핑하다가 우연히 피부관리업체 사이트를 찾았다. 이영애역을 하는 김현숙씨가 여기서 살도 빼고 놀랄만큼 이뻐졌단다. 그 사이트엔 뽀샤시한 몇장의 김현숙씨 사진이 게시되어 있었다. 여느 화장품광고모델 포즈를 한 '이뻐진' 영애씨는 좀 낯설었다. 내가 그녀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는 '넘 평범해서' 평범하지 않았던 그녀의 외모와 남자못지 않은 신체적, 정신적 파워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영애씨에겐 그녀를 구원해줄 왕자님이 꼭 필요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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