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 2.0과 더미의 희생 Art criticism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지원작가 차동훈의 작품세계에 관한 글입니다.]


1. 네오 vs. 차동훈


영화 <매트릭스> 매우 명시적으로 데카르트의 논증을 예시한다.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데카르트는 현실 같은 , 우리의 감각을 미혹시키는 악마를 떠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의심하기로 한다. 빨간 약을 선택할 네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는 안락한 가상 대신 불편한 현실을 선택했고, 비록 초라하고 비참할지언정 있는 그대로의 현재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해방의 그날을 꿈꾸었고 결국 인류를 대신하여 희생양이 됨으로써 꿈꾸던 미래를 실현한다

차동훈도 네오처럼 우리의 현재에 대해 비관적인 한편,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이다. 기술문명은 환경파괴와 인간성 소외를 초래했다. 모더니티의 추동력이 되어온 도구적 이성은 문명의 이기를 선사하기도 했지만, 타자인 인간, 동물, 식물 나아가 모든 사물을 수단화함으로써 결국 삶의 모태인 생태계 전체를 병들게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푸념은 무책임하고 비관은 아직 이르다. 네오와 반대로 작가는 불쾌한 현실을 극복할 대안으로 가상현실(VR) 택한다. 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가상세계로, 매트릭스로 들어가자고 제안하지 않는다. 대신 그가 제시하는 것은 가상세계를 현실로 확장시키는 혼합현실의 체험이다. 차동훈이 최근 몰두하고 있는 증강현실(AR) 작업은 바로 이런 사유의 궤적을 통해 도달한 지점이고, 아직 어떤 것일지 확실하지 않지만 앞으로 제시할 대안으로 향하는 과정 중의 지점이다


2. 우리의 더미, 더미의 우리


<코러스>(2010) 마치 세폭제단화(tryptich)처럼 개별적이고도 연속적인 화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3채널 영상 각각은 나름의 이미지와 사운드를 갖고 있다. 영상이 하나만 설치되면 <솔로>, 둘일 경우 <앙상블>이다. 영상 셋이 함께 있을 비로소 <코러스> 탄생한다. 말하자면 <코러스> 세개의 독립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감각적인 테크노사운드와 어우러진 흑백화면은 상당히 강렬한 자극이다. 개체의 미시적인 세부에서 출발하는 영상은 차츰 줌아웃되어, 종국엔 동일한 단위들의 전체 배열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코러스> 파트는 각각 <튜닝>, <사이렌>, <콜롯세움>이란 제목을 갖고 있다. <튜닝> 어딘가를 향해 힘껏 달리고 있는 일단의 남성 이미지들이다. <튜닝> 앙상블을 이루는 <사이렌> 런웨이워킹을 하는 젊은 여성들의 횡렬을 보여준다. 성인남녀들의 군상 중간엔 손가락으로 의자를 두드리며 초조감을 드러내고 있는 아이들이 제목대로 콜롯세움 형태로 등장한다. 작품은 독립적인 완결미를 갖고 있지만, 셋이 합쳐졌을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은 세배보단 세제곱에 가까운 효과를 가져온다. 서로 다른 영상의 병치가 형식적 균형을 이룰뿐더러, 각각의 사운드가 중첩되면서 새로이 탄생하는음향효과는 작품의 완성도를 적어도 세배 이상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CHORUS 중 <SIREN> 3D Animation_4'40"_2010]


     애니메이션, <코러스> 비유적으로 현대사회의 단면을 묘사한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전력질주에 여념이 없는 남성들, 우아한 걸음걸이로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는 여성들은 각각 자신의 노동과 신체에서 소외된 현대인의 표상이다. 남성이건 여성이건 현대인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노동과 신체를 물신화할 수밖에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중앙부에 위치한 초조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명문대를 꿈꾸며 학원가를 전전하는 아이들도 그들이 공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익명으로, 몰개성적으로 표현된 인물군상을 차동훈은 "더미(dummies)" 부른다. 타인에게 노동을, 성적 환상을, 미래의 꿈을 제공하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현대인들은 작가가 보기에 자동차 안전검사를 위해 사용하는 인체모형, 더미 별로 다를 없다


3. 증강현실, 가상과 현실의 중간계 


차동훈의 증강현실작업, <쿠로스>(2010) 더미에 관한 이야기다. 쿠로스는 앞서의 <코러스> 등장하는 인물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몰개성한 익명의 존재로, 무한복제가 가능한 동시에 언제든 폐기될 있는 대상이다. 구현방식은 다르지만 차동훈의 더미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우리의 대리물로 봉사하는 아바타와 유사하다. 스마트폰 위에 놓인 마커에 의해 구현된 쿠로스는 작가 자신의 아바타이기도 하지만, 작가로 표상된 인류의 대리자이기도 하다. 작가의 아바타이자 우리의 더미인 쿠로스는 발은 스마트폰 안에, 다른 발은 밖에 두고 힘겨운 걸음을 시도하고 있다. , 그것은 하나를 폰에서 미처 빼내지 못한 다른 발로만 밖을 향해 내딛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동시대 증강현실 테크놀로지에 대한 통찰의 일부를 <쿠로스> 통해 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쿠로스의 모호하고 불완전한 형상은 가상과 현실 사이에 어정쩡하게 위치한 증강현실에 대한 메타포로 읽힌다. 증강현실은 과거엔 불가능하던 상상의 여지를 허용한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등장한 이후, 사람들은 세계가 만약 누군가가 만든 가상이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상은 가상과 현실 사이에 위계를 설정하고 현실은 가상에 개입할 있으나 역은 불가능하다는 가정에서 나온 것이다. 가상현실 버전 2.0으로서 증강현실이 출현하기 전까지 이건 단지 가정이라기보다 사실에 가까웠다. 1990년대 중반부터 증강현실 기술개발이 활발해지고, 특히 최근 들어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우리는 점점 깊숙이 현실에 개입하는 가상을 체험하고 있다. 증강현실 에서 우리가 실지로 경험하는 것은 단지 '증대되고 강화된(augmented)' 각이 아니다. 그것은 가상과 혼융된 실재(reality), 가상의 개입 없이는 경험할 없는 실재다. 이런 의미에서 차동훈은 증강현실을 일종의 중간계와도 같다고 말한다



[차동훈_KUROS_설치에 증강현실_가변크기_2010]

[출처] 차동훈展|작성자 다다

[District_AR on google earth collage, 2010]


    지난 가을, 단체전에서 차동훈은 <AR on google earth collage>(2010) 전시했다. 그는 구글어스에서 받은 위성사진들의 꼴라쥬 위에 움직이는 마커를 놓아두어, 관객들이 마커를 움직이면서 다양한 가상이미지를 경험하게 했다. 회화적 평면과 디지털 영상이 공존하고, 신체적 행위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동하는 미디어작업은 아날로그도 디지털도 아닌 중간지대에 위치한다. 여기서 관객이 실제로 체험하는 것은 뒤섞인 공존하는 비물질적 가상과 물리적 현실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모호하게 남겨둔 작가의 의도는, 아마도 가상 현실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데 있는 같다. 요컨대 차동훈의 증강현실작업은 이러한 자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데카르트를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지각하는 현실이란 것의 진실성을 증명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작가는 우리의 감각경험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을 일련의 왜상(anamorphosis) 작업에서 보여준다. 내셔널지오그래픽誌에서 가져온 동물형상들은 키스하는 연인이 되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매트릭스 안에 존재하는 가상이라면, 혹은 영화 <13> 주인공처럼 상위 세계 사람에 의해 창조된 가상적 존재라면 어떻게 것인가




4. 실재, 가상과 현실의 혼융


물론 디지털적 가상과 아날로그적 현실의 현상적 차이를 부정할  없다가상세계에서는 남성이 여성이   있고팔과다리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정상인이   있다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상세계는 사이버숭고의 공간이기도 하다그러나 앞으로  발전할 증강현실기술은 우리의 감각경험을  불확실한 것으로 만들 것이고그리하여 이른바 현실만을 실재적이라 보고 가상은 한낱 허구로 치부하는 우리의 상식에 보다 강력하게 도전할 것이다동시대 형이상학자들은이런 시각을 지지하는 논변을 제공한다가령 들뢰즈에게 실재는 현실적으로 체험할  있는 실체가 아니라존재의 반복가능성으로서 잠재성을 의미한다 실재란 다양한 존재들의 생성  변화가능성이지 어떤 고정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시뮬라크르, 즉 가상이야말로 가장 실재적이라 할 수 있기에, 가상과 현실을 단순하게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  

    차동훈의 작업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여러 생각들이 산재해 있다희생자요대리자로서 주체에 대한 그의 사유는 "더미"라는 키워드로 자아와 타자남자와 여자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을 모호하게 한다그런가 하면 그는 증강현실작업을 통해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중간계에서 어떤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고 있다그것이 어떤 종류의 존재어떤 종류의 세계의 시작이 될지 아직은  수가 없다다만 앞으로 차동훈이 제시할 대안이 무엇인지어떤 새로운 시도를 할지 기대해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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