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범과 황우철 초록상자

참 이상하게도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임재범의 노래를 들으면 연상되는 작가가 있다. 지금 대만에서 영화찍기에 열을 올리고 계시다는 황우철선생님. 웹페이지를 아무리 뒤져도 내가 봤던 <세속적이거나 철학적인 욕망의 진화>(2008)를 찾을 수가 없다. 전에 찍어둔 사진은 또 어디 있는지... 암튼 연배가 비슷한 두 아티스트가 서로를 연상시킨다는 건 어쩜 필연일지도 모르겠다(둘다 63년생이다).  그 세대의 감수성이라는게 있으니... 그런데 그 이상의 무언가가 서로 생판 다른 동네에서 활동하는 두 인물을 엮고 있다. 아마도 임재범의 <빈잔>과 황우철의 <욕망의 진화>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실존적 공허감의 절절한 표출. 한 사람은 그것을 채워달라고 절규하고 다른 한 사람은 스스로 채우겠다고 아우성친다. 이런 애절함을 요즘 젊은 세대도 공감할 수 있을까? 때론 나조차 이런 진지함이 너무 부담스럽거나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말이다.  황우철 선생님의 요즘 작업에 등장하는 "아름다움"이란 단어에서조차 왠지 우울이 묻어난다. (요즘 선생님은 <나는 아름답다>라는 필름작업을 하고계신단다. 물론 선생님 영화를 보지도 않고 이런 말을 하는 건 오판일 가능성이 있다.) 


이건 <세속적이거나 철학적인 욕망의 진화>의 후기 버전 같다.  아마도 2009년작.  이하는 글잘쓰는 황우철 작가의 연대미상의 노트


서울에서 길을 잃고 낯선 이방의 거리에서 길을 찾는다말도 다르고 아는 지형도 없고 도시도 없으며 표지판의 지명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곳이다기차역 전광판의 화려함만큼 그곳에 도착하면 화려할까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의 지시등처럼 명백한 곳이 정말 그곳에 있을까거지와 도둑살인자와 살인을 마음에 품었던 사람들선한 사람아이를 데리고 있는 노인슬픔으로 가득한 눈동자를 지닌 청년어젯밤 처녀성을 잃은 소녀감기로 쿨럭거리는 학생과 수녀요가수행자집나온 여인과 집으로 돌아가는 쾡한 중년남자음습한 마음과 천사가 싸움을 벌이는 신부도박장에서 털린 신사주정뱅이절름발이맹인이 구걸과 동정심을 협박하는 곳에서 나는 나의 길을 묻는다. <나는 훨씬 더 나은 대접을 받고 살아야 할 가치가 있다.>

 

울 수 없어서 가슴이 더 마르고 저려와세상의 모든 거리들과 가로수와 사물들이 부릅뜬 눈으로 날 감시한다태평양 앞바다에서 심연으로 침몰하는 배처럼 기억들이 다시는 꺼내지 않을 저장고속으로 사라져 간다떠오르지 않는 시신처럼 마음은 시간의 무게에 눌려 질식해 간다찢어진 심장을 챙겨서눈물 뚝뚝 흘리며 눈물은 핏물만큼 진해졌다바느질찢기운 곳을 꿰맨다찢어질 때의 아픔보다 상처를 꿰매는 아픔이 더하다수술실 바늘 한 땀마다 눈물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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