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꿈, 그 숭엄의 뒤켠을 바라보며 Art criticism

철의 꿈, 그 숭엄의 뒤켠을 바라보며

 

강 미 정(서울대 융합기술원 연구교수)

 

6: 명사

1. <화학> 주기율표의 8족 금속 원소의 하나. 은백색의 고체로, 적철광자철석황철광 따위에서 얻는다. 연성(延性)전성(展性)이 크고 강한 자성(磁性)을 가지며, 습기가 있는 곳에서는 녹슬기 쉽다. 헤모글로빈이나 사이토크로뮴의 헴(heme)의 구성 성분으로, 생체에도 아주 중요한 원소이다. 원소 기호는 Fe, 원자 번호는 26, 원자량은 55.85.

 

고래: 바닷속에 사는 포유동물 중 고래목에 속하는 동물.

“(...) 고래는 세계적으로 약 80 여종이 알려져 있는데, 한국 근해에는 38종이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몸길이 45m 이상인 것을 고래, 소형인 것을 돌고래라고 한다(...) 대부분의 대형 고래류는 수염고래아목에 속하며, 이빨 대신 고래수염을 가지고 있다.”

 

1.

장소는 울산의 한 조선소. 그 광활한 공간 안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거대한 선박이 보인다. 서서히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숨이 막힐 것 같다. 보는 이를 압도하는 배의 모습은 한마디로 경이롭다. 아니, 경이롭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차라리 경외와 숭엄 그 자체다. 저것이 과연 제철소에 쌓여있던 철판들의 소산인가? 인류가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미개를 떨치고 문명을 꽃피우게 한 철, 더 최근에는 현대 산업사회의 기틀을 마련해준 강철이 지금 내 눈 앞에 그 위대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아주 천천히, 하지만 아주 위엄 있게

역시 장소는 울산이다. 그런데 이번엔 반구대 암각화가 보이는 대곡리의 한 계곡이다. 사람들은 바위에 새겨진 고래 문양을 보고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의 포경국가였을 거라고 떠들어댄다. 어찌되었든 간에 아주 오래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절벽에 고래와 사람, 그리고 동물들의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것 아닌가. 중요한 건 원시인들의 그림이 매우 단순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그 옛날 여기에 살던 사람들에게 커다란 고래는 무엇이었을까? 단지 먹을거리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성인 남자 키의 네 배를 훌쩍 넘기는 이 거대한 물고기는 어쩌면 그들의 신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반구대 그림에 새겨진 고래 이미지에서 유선형의 거대한 선박을 본다. 선사시대 사람들과 다소 비슷한 심경이 되어 배를 우러러 본다. ... 이 느낌은 뭔가 초현실적이다. 아니 초현실적이기에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그런 것이다. 문득 고래사냥을 나섰던 사람들의 꿈과 거대한 선박을 만드는 사람들의 꿈이 그다지 다를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바다에 대한 두려움과 동시에 정복을 꿈꾸었던 인류의 욕망은, 사람들로 하여금 고래잡이에 나서게도 했고 초대형 선박을 제작하게도 한 것이다. 강철로 만든 배는 이제 산업사회의 신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옛 선인들이 고래를 섬겼던 것처럼 우리의 신을 잘 섬기고 있는 걸까?


2.

박경근이 현재 제작하고 있는 영화, <철의 꿈>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선소에서 건조(建造) 중인 대형 선박의 장엄한 자태를 이 땅에 문명이 시작될 무렵 바위에 새겨진 고래 이미지와 중첩시킴으로써 그는 영화의 모티프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20세기 중반, 선사시대 사람들처럼 풍요를 꿈꾸던 사람들이 울산에 '현대'중공업을 세우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현대화를 일궈냈다고들 말한다. 옛 사람들이 고래에게서 얻었던 것을 현대인들은 쇠에게서 얻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선박의 아찔한 거대함이 일으키는 현기증은 반구대 암각화를 새겼던 사람들이 고래에게서 느끼던 그 숭고와는 조금 다른 감정인 것 같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것은 경외감을 넘어서는, 왠지 질리는 느낌이다. 그는 그 이유를 내면화되지 못한 한국의 산업화과정에서 찾는다. 비자발적 속도전을 통해 달성한 현대화는 이 땅에 기묘한 풍경들을 양산했다. 그래서 작가는 지금 제작 중인 <철의 꿈>에서 "산업사회의 죽음을 선포하는 제식을 창조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마치 옛 사람들이 고래를 동경했을 뿐 아니라, 포획하고 죽이고 먹음으로써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던 것처럼 말이다

"철의 꿈"은 원래 2010년작 <청계천메들리>의 부제였다. "산업사회의 죽음"의 감지는 이미 청계천에서 시작됐다. 인간이 쇠를 다듬어온 역사는 유구하다. 까마득한 시절부터 대장장이는 풀무질로 쇠를 단련해 창과 칼을 만들었고, 1970년대 사람들은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따라 철강, 기계, 조선, 석유화학 등 중공업을 육성함으로써 부와 풍요를 창출했다. 현대의 대장장이들, 한때 산업화의 주역이었던 사람들이 청계천의 좁다란 골목길에 지금도 똬리를 틀고 있다. 철지난 금속가공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기술자들은 이제 예전과는 사뭇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예전엔 탱크도 만든다던청계천이 요즘엔 금속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을 위해 일하곤 한다. 물론 악기 복원이건 아니면 생전 처음 보는 희한한 조형물 제작이건 간에 가리진 않는다.


CGC Medley -Single Channel Video, 2011 from Kelvin Kyung Kun Park on Vimeo.


청계천에서 펼쳐지는, 어딘지 불균형한 풍광을 카메라에 담던 작가의 눈엔 인간이 쇠를 다듬어 왔다기보다는 쇠가 인간의 삶을 형성해 왔다고 해야 할 역사가 보인다. 그는 이 문명사를 한국 근·현대사로 압축하고, 다시 그것을 자신의 가족사로 치환시킨다. 할아버지의 유령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띤 <청계천메들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기계장치가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이미지와 쇳소리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청계천의 좁은 공방골목으로 바삐 걸음을 재촉하는 남자의 등이 비춰지는데, 배경에 깔리는 여성 보컬의 읊조림이 나레이션과 이미지를 몽환적인 분위기로 이끌고 있다. 할아버지-아버지-나 삼대에 걸친 운명적 굴레와 그로 인해 반복되는 악몽이라는 설정, 중간 중간에 삽입된 신상옥 감독의 영화 <불가사리>196-70년대 산업현장을 보여주는 뉴스의 장면들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이 작품을 여타의 청계천 다큐멘터리와 구별시키고 있다

<청계천메들리>의 후속작인 <철의 꿈>에서도 초현실적 거리감이 확인된다. 바닥에 쌓여 있는 두꺼운 철판, 스프링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는 철사, 용광로 안의 붉은 쇳물, 건조 중인 선체의 하부 등 근접 촬영된 대상들은 반복적 패턴의 금속성 사운드와 어우러지면서 지극히 현실적인 노동의 현장을 심미적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조선소 하늘 위로 흩어지는 수증기는 이 공간을 더욱 신비롭게, 심지어 신성하게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심미적 장치보다도 박경근의 다큐멘터리를 비다큐멘터리적으로 만드는 것은 그가 이 공간의 국외자(outsider)라는 사실이다

외교관인 아버지 때문에 외국에서 주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작가에겐 동시대 한국사회가 때로는 불가해하게, 때로는 비현실적으로 비춰졌으리라. 초기작 <평화로운 신도시로의 초대>(2005)는 미군 비행장이 있는 소도시 평택의 곳곳을 촬영한 것이다. 이태원의 미8군기지나 동두천의 미군부대를 실제로 또는 대중매체를 통해 보아온 사람들의 눈엔 그닥 신기할 것 없는 광경이 작가에겐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오후 6시마다 애국가와 미국국가가 차례로 방송되고 F16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는 도시, 평택은 그에게 풍경이 압권인 평화로운 신도시였던 것이다


Invitation to a Peaceful City, 2 Channel Installation (simulation) from Kelvin Kyung Kun Park on Vimeo.


박경근의 기준에선 한국사회에 찌끼처럼 잔존하고 있는 성공, 성장, 권력지향의 남성중심 이데올로기가 이해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껍데기만 남아있는 허상처럼 보였던 것 같다. 그는 말한다. “쇠는 강한 것 같지만 쉽게 녹스는 약한 금속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남성은 강인한 척 으스대지만 한 순간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약한 존재다.” 마치 1960년대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청계천은 그에게 한국사회의 모순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공간이었다. 청계천 남자들은 하수구 위로 쌓이는 개불의 내장이 징그럽다, 개불이 콘돔처럼 생겼다, 하면서 즉석 개불구이를 해먹고 있다. 꽤 오랫동안 개불 내장에 고정되어 있던 카메라 렌즈 너머로 작가는 무엇을 보았을까? 허울만 남은 과거의 가치관과 더럽고 역겨워 보이는 먹거리처럼 모순과 아이러니로 가득찬 우리네 일상이 국외자인 작가의 눈에는 더 선명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 한편 한국사회에 뿌리를 두고도 국외자일 수밖에 없는 작가에겐 잠깐,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3.

한국적 일상과 모조적 미국생활이 공존하는 평택, 유신시대 경제발전 이데올로기의 자취를 간직한 청계천 뒷골목, 그리고 세계적인 수준의 조선술을 자랑하는 울산으로 이동해 가면서 박경근은 자신의 개별적이고 고유한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근·현대사를 그려내고 싶어했다. 그가 <청계천메들리>에서 할아버지의 망령을 등장시켰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사업에 성공했던 할아버지, 그러나 청계천에선 실패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철의 역사와 한국 현대사를 영화에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장치로 작동했다. 하지만 영상작가 박경근이 바랬던 것은 그 장소와 시간들을 오롯이 이미지로 담아내는 작업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모름지기 영화라는 매체에선 이미지가 내러티브를 주도해야 하기 때문이란다.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말로 표명하는 건 사태를 한정짓고 더 나아가 속단하는 일이다. 명료한 언어에 비해 불명료하고 모호한 이미지는, 작가가 판단하기에, 훨씬 더 풍부한 의미작용을 한다. 특히 잘 만들어진 영상작업은 끊임없이 길어올릴 수 있는 의미의 깊이를 갖는다

조선소에서 제작되고 있는 선박의 이미지는 압도적이다. 이 경이로운 광경을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박경근은 완성되어 가는 선체의 하부를 롱테이크로 찍기도 하고, 선체를 수직으로 내려다보며 조감하기도 한다. 작가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아이러니를 파헤치기보다는 단지 그 표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다고 말한다. 거대한 선박을 현대인의 신으로 제시하면서 그가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 또는 관객이 느끼길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는 관객이 그 숭고한 대상의 뒤켠을 바라보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철의 꿈>을 보는 관객이 초월적 스케일의 기계가 지닌 숭고함과 더불어 현대화의 이데올로기라는 허상을 확인하는 것이 작가의 바램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미지의 힘으로 영상작업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작가의 의욕은 높이 사고 싶다. 그런데 1시간이 넘는 영화에 내러티브를 삽입하지 않는 건 여러 가지 이유에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시간적인 특성을 지닌 영화라는 매체는 선적으로 진행되는 내러티브와 잘 맞아떨어질뿐더러, 대체로 이야기 구조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일단 텍스트가 이미지와 결부되게 되면 이미지의 의미작용은 변형되거나 약화되기 마련이다. 아무리 영상작업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텍스트가 침투하는 순간 오염될 수밖에 없고, 대부분의 관객은 언어를 통해 이미지를 규정하고 판단하는 강력한 습관을 떨쳐 버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한편의 영화로서 <청계천메들리>의 완성도를 높여줬던 주요 요소 중 하나는 할아버지의 과거사와 얽혀있는 꿈이야기였다. 박경근이 그가 지금 준비 중인 <철의 꿈>이나 그 후속작에서도 그의 영상작업을 더욱 빛나게 해줄 이야기 장치를 마련하길 기대한다. 영상작업 자체의 효과가 텍스트와 섞이면서 변화하고 심지어 퇴색된다 하더라도, 이미지와 텍스트의 혼융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는 의미작용을 잘 활용한다면 작가는 하나의 영상텍스트를 통해 관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 이글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제6기 입주작가 박경근의 미디어아트에 대한 평문입니다.]


덧글

  • kmk 2013/01/04 13:26 # 삭제 답글

    동두천경찰서의 사기갈취 Naver ckmk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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