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인간 소통의 열쇠]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호학적 차이 C.S.퍼스와 기호학

3. 이미지와 텍스트의 기호학적 차이

 

20세기는 학문 전 영역에 있어서 기호학적 전환의 시기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호학적 전환은 리처드 로티가 언어적 전환이라고 말한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언어는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나타냄으로써 의미를 생성하고 전달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간적 소통수단이다. 20세기 들어 철학은 과거처럼 세계의 본성에 대해 논하는 대신 세계에 대해 기술한 언어의 분석으로 선회했고, 언어학은 언어를 다른 더 중요한 일을 위한 보조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탐구할 가치가 있는 대상으로 간주했다.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은 실제 언어뿐만 아니라 그림, 사진, TV영상 같은 이미지조차도 일종의 언어로 간주하는 태도를 초래했다. 그리하여 오늘날 사람들은 영상기호외에 영상언어라는 일견 모순적인 용어를 구사하기도 한다.

영화의 한 장면을 일종의 텍스트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미지가 단지 보기의 대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장처럼 읽기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현상적 차이가 기호학적으로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주로 언어기호의 특성과 구조에 대해 주목했던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달리 찰스 S. 퍼스는 언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기호에 관심을 기울였다. 퍼스에 따르면 말과 글뿐만 아니라 이미지, 소리, 냄새 등 온갖 종류의 지각 현상이 기호로 작용할 수 있다. 퍼스는 기호전달체와 지시대상의 관계를 중심으로 세 종류의 기호를 분류했다. 즉 도상은 양자의 닮음에 근거하여 해석되고, 지표는 양자의 물리적 연관에 의해 해석되며, 상징은 관습적 코드에 따라 해석되는 기호다. 퍼스의 도상, 지표, 상징의 삼분법은 이미지 같은 비언어적 기호와 언어적 기호의 의미론적 차이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림1] 르네 마그리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1953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그림1]에는 도상과 상징 두 종류의 기호가 등장한다. 실제 파이프로 착각될 정도로 정밀하게 묘사된 파이프의 그림은 도상이고, 파이프 그림 아래에 쓰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문장은 상징이다. 프랑스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파이프 이미지 아래의 글씨들은 아무 뜻도 전달하지 못한다. 오로지 프랑스어권에서 통용되는 문법을 학습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는 문자언어와 달리, 파이프와 꼭 닮은 파이프 그림은 누구나 그것의 재현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마그리트는 왜 파이프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놓았을까? 아마도 그는 이것은 파이프를 재현한 이미지이지 파이프 자체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그리트는 회화의 임무는 자연의 정확한 재현이라고 믿는 서구인의 관습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원근법과 명암법을 적절히 활용하여 현실 세계의 닮은꼴을 제작하는 재현의 관습은 회화를 단지 도상일 뿐 아니라 상징이기도 한 기호로 만든다. 회화가 일종의 상징으로 간주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비언어적인 기호이다. 회화에는 언어처럼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나, 또 단어를 구성하는 음소 같은 분절적 단위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모든 언어는 디지털적인 반면, 이미지는 때로 상징으로 작용한다 하더라도 언제나 아날로그적이라는 것이다.

[그림2] 판자니 파스타 광고

 

롤랑 바르트는 일찍이 소쉬르의 구조주의 기호학을 영상언어의 해석으로 확장시킨 인물이다. 이미지의 수사(1964)에서 바르트는 잡지에 게재된 파스타 광고를 분석한다. 광고에는 판자니라는 상표를 비롯한 언어적 기호도 눈에 띄고, 장바구니와 각종 파스타 재료의 이미지 즉 비언어적 기호도 보인다. 판자니 광고를 분석하면서 바르트는 우선 언어기호의 의미의 두 층위를 분리한다. 가령 ‘PANZANI’라는 단어는 단지 파스타 제조회사를 외시할 뿐 아니라, ‘이탈리아풍이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광고의 사진이미지에서도 언어와는 다르지만 문화적 코드를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토마토와 고추 같은 야채들이 담긴 장바구니는 재료의 신선함과 손수 준비한 식탁의 행복감을 암시하고, 화면에 편재한 빨강, 초록, 노랑의 색채는 이탈리아란 나라를 떠올리게 한다. 하나의 정물화처럼 보이는 사진의 구도 또한 서구 미술의 전통에 대한 지식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진은 카메라의 기계적 메커니즘에 따라 자동적으로 생성된 것이어서, 사람이 제작한 드로잉이나 회화와 달리 관습에 얽매이지 않은 순수한 이미지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퍼스는 사진을 지표기호의 한 사례로 간주했다. 사진은 그 대상과의 광학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 지표인 한편, 대상과 외양이 매우 유사한 도상이기도 하다. 바르트는 이런 사진의 지표적 의미를 코드 없는 메시지라고 부르면서 그 역설에 대해 언급한다. 즉 사진이 지시대상 외엔 아무 것도 지시하지 않는 것 같은 텅 빈인상은 사진의 함축적 의미를 자연스럽게 만드는 장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판자니 광고사진은 지표인 동시에 상징인 셈이다.

비언어적 기호인 이미지는 주로 상징적 의미작용에 의존하는 언어적 기호인 텍스트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의미를 생성한다. 시어 같은 문학적 텍스트를 예외로 한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지가 기호학적으로 더 유용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음소나 단어 같은 기본 단위로 분절되는 언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소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선적으로 나열되는 텍스트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한 반면, 장황한 이야기를 단일한 화면 안에 배열하는 이미지의 의미는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이미지와 텍스트는 상이한 의미작용 방식을 취하며 각자의 장단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사회적 소통에서 이미지와 텍스트를 적절히 혼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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