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인간 소통의 열쇠] 예술과 기호 C.S.퍼스와 기호학

4. 예술과 기호

 

기호의 기능은 의미작용과 의사소통의 두 가지로 요약된다. 본 기획시리즈에서는 기호의 두 기능에 대해 모두 설명하고 있지만 그중 특히 의사소통 또는 전달의 기능을 더 부각시키고 있을 뿐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의사소통의 가장 주요한 수단이 되어온 것은 언어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말이나 글 외에도 소리, 이미지, 몸짓, 감촉, 냄새 같은 것들도 의사전달의 수단으로 빈번히 사용되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능한 사람들을 우리는 자주 예술가들 가운데서 발견하곤 한다. 물론 남들보다 언어적 표현에 능숙한 시인이나 소설가도 예술가 집단에 속한다. 하지만 비유법이나 반어법에 자주 의존하는 시나 소설의 언어는 일상생활의 언어와는 매우 다르다. 정보의 정확한 전달이 가장 우선시되는 일상적 언어와는 달리 문학의 언어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표현된 메시지 너머까지 바라보게 한다.

하나의 기호로서 예술작품은 퍼스의 도상, 지표, 상징의 삼분법에서 도상의 범주에 주로 속한다. 이는 문학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다.”라는 시구에 담긴 은유는 일종의 도상이다. 은유는 초상화나 사진처럼 그 대상과 외관상의 유사성을 갖고 있진 않지만, 특정 개념을 매개로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도상의 특수한 형식이 된다. 말하자면 내 마음은 호수다.”에서 주어인 내 마음호수는 공통적으로 고요함과 닮았고 따라서 양자는 매개적 유사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시각예술가도 단순히 세계의 닮은꼴을 제작하는데 그치는 대신, 문학과 마찬가지로 은유 같은 비유법을 사용하여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가 많다. 해석의 관습에 의존하는 상징인 동시에 도상이기도 한 은유는 모든 종류의 예술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기법으로, 심미적 예술의 의미작용을 도구적 언어의 그것과 차별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소다.

르네상스 미술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멜랑콜리아I>(1514)에서 컴퍼스를 쥐고 사색에 잠긴 여인을 중심으로 토성, 천칭, 마방진, 대패와 톱, 기하학적 도형들이 배치된 장면을 보여준다. 이 동판화에 등장하는 온갖 종류의 사물들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서양문화사의 배경 안에서 해석되어야 할 상징들이다. 제목인 멜랑콜리아 즉 우울은 그림에서 수심에 찬 여인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다혈질, 담즘질, 점액질, 우울질의 네 가지 체질 중 우울질은 기독교 세계에서 게으름의 표상이었으나, 르네상스시기에 이르러 천재의 기질과 동일시되었다. 뒤러는 <멜랑콜리아I>에서 자연의 진리를 드러내야 하는 자신의 임무 앞에서 고뇌하는 예술가의 자화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컴퍼스, 천칭, 대패와 톱, 기하학적 도형들은 합리성과 과학을 나타내는 환유들이다. 환유란 대상의 부분으로 전체를 의미하는 비유법으로 은유와 마찬가지로 상징이자 도상인 기호다. 서양미술사 전통에는 성서나 신화의 내용에 따른 관습적인 표현법이 존재해왔고 이를 해석하는 학문을 도상학이라고 불러왔다. 20세기 초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전통적인 도상학을 체계화하여 단지 개별적 도상의 의미를 풀이하는 차원을 넘어 작품의 근저에 깔린 시대정신까지 파악하는 도상해석학을 성립시켰다. 파노프스키는 "우울이 없이는 창조적 상상력도 기대할 수 없으며, 모든 창조는 우울로부터 연유한다."고 본 당대의 신플라톤주의자 피치노의 사상으로부터 뒤러가 영향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와 같은 도상해석학적 설명을 통해 신비에 싸인 <멜랑콜리아I>의 의미가 더욱 명확해졌다.

도상으로서의 예술작품은 시각예술 외에 음악과 무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술상징론자 수잔 랭거는 예술작품이 우리의 감정과 동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예술상징의 형식과 감정의 형식은 겉모습이 닮았다기보다는 구조적 유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유비적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9번 교향곡 4악장이 기쁨을 표현한다고 해석되는 이유는 악음의 배열이 기쁨이라는 감정의 형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베토벤이 단지 프리드리히 실러의 <환희의 찬가>에 곡을 붙였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체적으로 느끼는 기쁨의 감정과 동일한 구조를 지닌 기호, 즉 기쁨의 도상을 구현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우리가 기쁨에 넘쳐 우와!”라는 감탄사를 터트리는 것도 도상기호다. 그러나 즉각적 외침은 예술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비유적이 아니라 실제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현대 무용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비애에 찬 피나 바우쉬의 몸짓기호가 슬픔에 빠진 사람의 몸동작과 구별되는 것은, 그녀가 슬픔을 그 유기적 구조에 상응하는 형식을 지닌 상징 즉 은유로 승화시킨 덕분이다.

한편 동시대 미술가 중에는 지표기호를 통해 작품을 자기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이 있다. 주지하듯 지표는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지닌 기호여서 대상의 존재를 증명해준다. 가령 곱게 화장을 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초상사진은 작가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을 가리킨다. 데니스 오펜하임이 자신과 아들 지문 형태를 확대시켜 버팔로시 외곽에 그대로 전사한 대지예술, <정체성 확장>(1975) 또한 지표적 의미작용을 활용한 사례다. 하지만 미술작품은 지표적 요소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사물이나 감정의 재현으로서 도상인 경우가 많다. 또한 도상에 담긴 풍부한 의미는 긴 글로 풀어 쓰더라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흔히 예술가들을 창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언어적 소통에 능숙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의미를 길어낼 수 있는 비유적 표현들을 창안해냄으로써 많은 이들이 작품과 대화하도록 유혹하기에 창조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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