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 인간 소통의 열쇠] 대중문화의 기호학 C.S.퍼스와 기호학

5. 대중문화의 기호학

 

1985년작 영화 <백투더 퓨쳐 I>에서 주인공 마티는 30년 전 과거로 거슬러 가는 시간여행을 한다. 1955년에 도착한 마티가 아직 십대인 엄마의 집에 방문한 장면에는 TV가 놓인 거실이 나온다. 1950년대를 묘사하는 영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것이 구식인 반면, 온 가족이 함께 바라보는 TV1980년대뿐만 아니라 21세기 현재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1950-60년대는 구미의 각 가정에 TV가 보급되던 대중문화 폭발의 시대였다. 록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전대미문의 인기를 구가했던 것은 TV라는 강력한 영상미디어 덕분이었다. 첫 등장이후 TV는 쉴 새 없이 뉴스, 드라마, 엔터테인먼트쇼, 상업광고를 일방적으로 송출하며 대중의 일상생활 속으로 급속히 침투해 들어갔다.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대중문화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면서 학계의 일각에서 문화연구라는 분야가 떠올랐다. 20세기 중반 영미권의 문화이론가들은 시대에 맞게 수정된 맑스주의로 무장하고 매스미디어가 어떻게 대중의 사고를 교묘하게 조종하는지 비판했다. 동시대 문화연구가 기호학의 범주에 귀속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루이 알튀세르 같은 구조주의적 맑시즘을 수용하거나 후기구조주의 사상에 의지한다는 점에서 기호학적 면모를 띠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신화론>(1957)에서 다양한 문화적 양식들을 분석함으로써 현대인의 삶에 편만한 신화들에 대해 고찰한다.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를 믿지 않게 된 현대에 이르러 인간 이성이 신적 능력을 대신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신화 같은 허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현대의 신화는 다름 아닌 부르주아계급이 유포시켜온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다. 바르트는 문학, 예술, 영화뿐만 아니라 일상적 대화, 뉴스보도, 결혼식, 요리에도 신화가 스며들어 있다고 말한다. 현대적 삶을 구성하는 모든 문화적 형식들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그것들이 특정 주체가 생산한 인공물임에도 마치 본래 그랬던 것처럼 자연스러움을 가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광고는 어쩌면 가장 미묘한 형식의 신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광고가 실존 인물과 실제 사물을 사진이나 동영상 같은 기록물로 보여줌으로써 홍보문구의 도취적 효과를 그 제품이 진짜로 갖고 있는 것처럼 소비자를 현혹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테니스의 전설, 국제적 수퍼스타, 아빠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있는 벤츠 광고를 보자. 유명한 테니스스타 로저 페더러나 벤츠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에겐 이런 문구나 이미지가 그저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만 읽힐 것이다. 바르트는 이미지의 두 가지 메시지를 구분하면서 그중 문자적 의미의 층위를 코드 없는 도상적 메시지라고 부르고, 소쉬르를 따라 이 첫 번째 기호를 언어라고 명명한다.


그런데 페더러를 알거나 그에게 열광하는 스포츠팬에게 벤츠 앞에 서 있는 페더러의 이미지는 단지 문자적 의미로만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페더러가 홍보하는 차종은 운전자를 위한 세단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SUV. 광고의 언어적 메시지와 함께 SUV 앞에 선 페더러의 이미지는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에게 명예만큼이나 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암시하고 있다. 이 광고는 남성소비자에게 이 차를 구입하면 페더러처럼 유능할 뿐만 아니라 자상한 아빠가 될 것 같은 동일시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요컨대 이 벤츠 광고는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함으로써 중산층 소비자들의 가부장적 가치관에 부합하고 있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처럼 심층적인 의미를 코드화된 도상적 메시지라고 하면서 이 두 번째 기호를 신화로 규정한다.

 우리가 즐겨보는 TV 드라마나 광고영상은 반복적으로 행복한 가족의 외양을 그려내면서 단지 가정의 소중함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 사회적 역할을 학습시키는 기능을 수행해왔다. 대중영화도 이에 못지않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존속에 기여해왔다. 로라 멀비는 자크 라캉의 후기구조주의적 정신분석학에 기대어 헐리우드 주류영화의 남성중심주의적 시각 기제를 해체하고자 한다. 가령 <돌아오지 않는 강>(1954)의 마릴린 먼로의 관능적 신체는 시선의 주체인 남자주인공뿐만 아니라 남자주인공과 스스로를 동일시하는 남성관객의 시각적 쾌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어두운 극장의 남성관객들은 일종의 관음증적 환영을 즐기는 동시에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을 탐닉한다. 즉 마치 거울단계의 어린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스크린을 바라보는 남성들은 남자주인공의 행위를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면서 쾌락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시증(scopophilia)과 나르시시즘은 남성관객에게 단지 보는 즐거움을 넘어, 여자주인공을 성적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통제 하에 두는 쾌감을 안겨준다. 능동적 시선의 주체로서 남성과 수동적 응시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설정은 오랫동안 주류 상업영화를 지배해온 기본 구도가 되어왔으며, 이러한 관행은 가부장적 질서를 공고히 하고 남성의 우월성을 합리화하는 암묵적 수단이 되어왔다.

이제는 여성캐릭터의 능동적 역할을 부각시키거나 여성주의적 소재를 다룸으로써 큰 호응을 얻은 사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델마와 루이스>(1991)<디 아워즈>(2002) 같은 영화가 그런 예에 속할 것이다. 더욱이 인터넷이 TV보다 우세한 미디어로 자리매김한 오늘날 거대 자본의 일방통행식 메시지 전달력은 크게 약화되고, 문화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의 상호소통이 매우 활발해졌다. 반세기 전과는 상황이 많이 변했다 하더라도,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시키는 신화적 기제가 TV드라마나 영화 같은 대중적 문화형식에서 아직도 자주 발견된다. 남성관객의 성적 욕망에 부응하고자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다수 걸그룹의 댄스음악이 그 단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바르트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신화라고 부른 것은 실상 소수 자본가계급의 이익을 위한 체제인 자본주의가 문화의 탈을 쓰고 자연을 가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가부장주의 신화 또한 대중문화 곳곳에 산포된 채 남성지배적 현실을 은폐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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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가을학기 성신여대학보에 총5회에 걸쳐 연재한 비전공자를 위한 기호학 시리즈, [기호, 인간 소통의 열쇠]를 마무리합니다. 기호학이 유행했던 시기가 20세기 중후반이라 전공자에게는 이미 익숙해진 이론과 사례들입니다만, 일반 교양인을 위해 나름대로 재구성했니다. 퍼가실 분들은 출처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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